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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

상자 안의 고양이는 살아 있을까, 죽어 있을까― 슈뢰딩거가 던진 질문의 진짜 의미

by 너의sunday 2025. 11. 16.

0. 이 질문이 계속 마음에 남았던 이유

“상자 안의 고양이는 살아 있을까, 죽어 있을까?”

이 문장은 과학 대중서나 강의에서 너무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의 재미있는 비유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양자역학을 조금 더 들여다볼수록
이 질문이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양자역학이 안고 있는 불편한 핵심을 정확히 찌르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선명해졌다.

이 글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정답을 주는 예시가 아니라,
왜 이런 질문이 필요했는지를 따라가며 정리한 기록이다.


1. 사고 실험은 이렇게 설정된다

1935년,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는
양자역학의 해석이 가진 문제점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극단적인 상황을 상상했다.

밀폐된 상자 안에는 다음이 들어 있다.

  • 한 마리의 고양이
  • 방사성 원자 하나
  • 방사선 검출기
  • 독가스 장치

이 원자는 **1시간 안에 붕괴될 확률이 50%**다.
붕괴되면 검출기가 작동하고 독가스가 방출되어 고양이는 죽는다.
붕괴되지 않으면 고양이는 살아 있다.

여기까지는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양자역학의 설명을 그대로 적용할 때 발생한다.

2. 문제가 되는 지점: 중첩의 확장

양자역학에 따르면
방사성 원자는 관측되기 전까지
‘붕괴한 상태’와 ‘붕괴하지 않은 상태’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를 **양자 중첩(superposition)**이라고 부른다.

이 원자가 장치와 연결되어 있다면,
논리적으로 고양이의 상태도 함께 묶인다.

즉, 상자를 열기 전까지
고양이는
‘살아 있음’과 ‘죽어 있음’이 중첩된 상태에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긴다.

미시세계에서 성립하는 설명을
거시적인 존재에게까지 그대로 적용해도 되는 걸까?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바로 이 질문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3. 관측의 문제: 현실은 언제 하나로 정해질까

이 사고 실험은
양자역학의 가장 논쟁적인 주제인
**관측 문제(Measurement Problem)**와 연결된다.

대표적인 해석은 서로 전혀 다른 답을 내놓는다.

  • 코펜하겐 해석
    → 관측 순간, 파동함수가 붕괴되어 하나의 현실이 선택된다.
    → 상자를 여는 행위가 결과를 확정한다.
  • 다세계 해석(Many Worlds Interpretation)
    → 관측은 붕괴가 아니라 분기다.
    → 한 우주에서는 고양이가 살아 있고,
    다른 우주에서는 죽어 있다.

이 차이는 단순한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 하나인가, 여러 개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4. 슈뢰딩거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흔히 오해되지만,
슈뢰딩거는 고양이가 실제로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다’고 주장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미시세계의 수학적 설명을
아무 고민 없이 거시세계에 적용하는 것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즉, 이 사고 실험은
양자역학의 이상함을 옹호하기 위한 예시가 아니라,
그 이상함을 드러내기 위한 비판적 장치였다.


5. 오늘날 물리학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현대 물리학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단순한 우화로 취급하지 않는다.

실제로 연구는 점점
‘고양이’에 가까운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 분자 규모에서의 중첩 실험
  • 양자컴퓨터의 큐비트(qubit)
  • 양자 탈코히런스(decoherence) 연구
    → 중첩이 왜, 언제 고전적 상태로 무너지는지 분석

이 연구들은
중첩이 단순한 철학적 상상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경계 조건임을 보여준다.


6. 그래서 이 사고 실험이 남긴 질문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살아 있나, 죽었나”를 묻는 실험이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 관측이 현실을 만드는가?
  • 아니면 현실은 관측과 무관하게 존재하는가?
  • 우리가 보는 세계는 결과인가, 과정인가?

이 질문이 물리학을 넘어
철학, 인공지능, 인식론으로까지 확장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무리: 고양이는 여전히 상자 안에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정답을 알려주는 사고 실험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너무 쉽게 받아들인 설명을 다시 의심하게 만드는 장치다.

양자역학은
객관적으로 고정된 세계를 말하기보다,
관측과 인식이 얽힌 세계를 암시한다.

그래서 고양이는 아직도 상자 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 듯하다.

“당신이 보기 전까지,
나는 하나의 상태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