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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

멀리 떨어져 있는데, 왜 연결되어 있을까― 양자 얽힘이 던지는 가장 불편한 질문

by 너의sunday 2025. 11. 15.

0. 이 개념이 끝내 마음에 걸렸던 이유

양자역학을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설명이 아니라 감정이 먼저 따라오는 개념이 있다.
바로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다.

두 입자가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한쪽을 측정하는 순간 다른 쪽의 상태가 즉시 정해진다는 설명은
아무리 여러 번 읽어도 직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이를
“유령 같은 원격작용(spooky action at a distance)”이라 불렀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이 현상은 처음부터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얽힘이 무엇인지 나열하기보다,
왜 이 개념이 끝내 무시될 수 없었는지를 따라가며 정리한 기록이다.


1. 얽힘을 이해하려면 ‘상태’부터 다시 봐야 한다

양자역학에서 입자는
고전적인 점 입자가 아니라
확률파동으로 기술된다.

즉, 위치나 속도 같은 물리량은
측정 이전에는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고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포함된 상태로 존재한다.
이를 **중첩(superposition)**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전자의 스핀은
‘위(↑)’ 또는 ‘아래(↓)’ 중 하나로 측정되지만,
측정 이전에는 두 가능성이 동시에 포함된 상태로 표현된다.

여기까지는 이미 낯설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상태가 두 입자에 동시에 적용될 때 시작된다.


2. 두 입자는 더 이상 ‘각각’이 아니다

두 전자를 특정한 방식으로 만들면
이들은 **얽힌 상태(entangled state)**가 된다.

이때 중요한 점은
각 전자의 상태를 따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입자의 파동함수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여 표현된다.

그래서 한 전자의 스핀을 측정해
‘위’가 나오는 순간,
다른 전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즉시 ‘아래’로 결정된다.

여기서 많은 오해가 생긴다.
마치 정보가 순간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전달되는 신호는 없다.
그럼에도 상관관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 지점이
고전 물리학과 가장 충돌하는 부분이다.


3. 아인슈타인의 의문: 이건 뭔가 이상하다

1935년, 아인슈타인과 동료들(EPR)은
이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의 질문은 단순했다.

한 입자의 측정으로
다른 입자의 상태를 즉시 알 수 있다면,
이건 빛보다 빠른 정보 전달이 아닌가?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통해
빛보다 빠른 정보 전달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양자역학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변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EPR 역설이다.


4. 벨의 부등식이 만든 결정적 갈림길

이 논쟁을
철학이 아니라 실험으로 옮긴 사람이
존 벨(John Bell)이었다.

벨은
숨겨진 변수 이론이 맞다면
측정 결과 사이에 반드시 만족해야 할
수학적 한계를 정리했다.
이것이 벨의 부등식이다.

  • 숨겨진 변수가 존재한다 → 부등식이 성립
  • 양자역학이 맞다 → 부등식이 깨진다

그리고 실제 실험은
후자의 결과를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특히 2015년,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의
루프홀 없는(loophole-free) 실험
얽힘이 실제 자연 현상임을 명확히 확인했다.

아인슈타인의 의심은
존중받을 만했지만,
자연은 그의 직관과 달리 작동하고 있었다.


5. 얽힘은 더 이상 철학이 아니다

이제 얽힘은
이론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기술적 자원이 되었다.

  • 양자 암호 통신
    → 얽힘이 깨지면 도청이 즉시 드러난다
  • 양자 컴퓨팅
    → 얽힌 큐비트가 병렬 계산을 가능하게 한다
  • 양자 텔레포테이션
    → 물질이 아니라 상태 정보를 전달한다

얽힘은
‘이상한 현상’이 아니라
제어하고 활용해야 할 물리적 성질이 되었다.


6. 얽힘이 흔드는 것은 ‘입자’가 아니라 ‘관계’다

양자 얽힘이 정말로 불편한 이유는
입자가 이상해서가 아니다.

이 현상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독립된 개체”라는 개념 자체를 흔든다.

양자 세계에서는
입자가 혼자서 정의되지 않는다.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즉,
존재란 고립된 실체가 아니라
연결의 구조일지도 모른다.


마무리: 유령 같은 현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양자 얽힘은
아직도 완전히 ‘이해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하나다.

자연은
우리가 편안하게 생각해온 방식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 현상은
이제 실험으로, 기술로, 현실로 남아 있다.

얽힘은
미시 세계의 특이한 예외가 아니라,
현실을 설명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