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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

양자터널링: 장벽을 넘어가는 확률의 물리학

by 너의sunday 2025. 12. 2.
 
 
 

며칠 전, 저장장치의 데이터 보존 문제를 조사하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SSD나 USB 같은 플래시 메모리에 전자가 저장되는 과정은 “터널링”이라는 현상에 의존한다는 것.
전자가 산화막이라는 얇은 장벽을 관통해 트랩층에 들어가고, 빠져나오는 과정이 곧 0과 1의 정의를 만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설명이 이상하다.

“전자가 장벽을 넘어간다? 에너지가 부족한데?”

고전역학이라면 절대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자연은 우리 상식과 다르게 작동한다.
이 글에서는 바로 그 “상식 바깥의 세계”, 양자터널링을 차분하게 풀어본다.


1. 고전역학의 직관: 에너지가 부족하면 벽은 넘을 수 없다

고전역학에서는 물체의 운동이 명확하다.
위치, 속도, 에너지—이 값들이 정확히 정해져 있으니
결과도 예측 가능하다.

높이가 2m인 벽이 있다고 치자.
1.5m의 에너지를 가진 공은 절대 벽을 넘지 못한다.

이를 물리식으로 쓰면 간단하다.

E<V0⇒장벽 통과 불가E < V_0 \Rightarrow \text{장벽 통과 불가}

여기서

  • EE: 입자의 에너지
  • V0V_0: 장벽의 높이

고전역학에서는 이 불등식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에너지가 부족하면 절대 넘어갈 수 없다.”

하지만 원자 단위 세계에서는 이 규칙이 부서진다.


2. 양자역학에서 입자는 “점”이 아니라 “파동”이다

양자역학은 입자를 파동함수 Ψ\Psi로 표현한다.
이 파동은 현실 세계 어느 부분에서도 완전히 0이 되지 않는다.

양자 상태의 진정한 본질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1. 입자는 확률로 존재한다.
  2. 파동은 장벽 앞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감쇠한다.

파동함수의 절댓값 제곱은
입자가 그 위치에 있을 확률을 의미한다.

∣Ψ(x)∣2=probability density|\Psi(x)|^2 = \text{probability density}

이 파동적 성질이 ‘터널링 가능성’을 만든다.


3. 수학으로 보는 터널링: 장벽 내부에서 파동은 지수적으로 감소한다

가로 길이 aa, 높이 V0V_0인 장벽을 가진 1차원 문제를 생각하자.

입자의 에너지가 장벽보다 낮다면, 장벽 내부의 파동함수는 다음 형태가 된다.

Ψ(x)=Ae−κx+Beκx\Psi(x) = Ae^{-\kappa x} + Be^{\kappa x}

감쇠 상수 κ\kappa 는 다음과 같다.

κ=2m(V0−E)ℏ\kappa = \frac{\sqrt{2m(V_0 - E)}}{\hbar}

이 함수는 물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 장벽이 높을수록 (V0V_0 ↑)
  • 장벽이 두꺼울수록 (aa ↑)
  • 입자의 에너지가 낮을수록 (EE ↓)

파동은 “더 빨리” 약해진다.

하지만 0은 아니다.
아무리 작아도 0.000000…1 같은 아주 작은 확률이 남아 있다.

터널링 확률은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

T≈e−2κaT \approx e^{-2\kappa a}

즉, 장벽의 두께나 높이가 조금만 달라져도 확률이 지수적으로 변한다.


4. 직관적 비유: 터널링을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

4.1 벽을 사이에 둔 ‘소리의 잔향’

벽이 있다 해도 음악 소리는 아주 약하게 옆방으로 전달된다.
벽이 완벽히 차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입자의 파동도 장벽에서 갑자기 끊기지 않는다.
아주 작은 꼬리가 남아 있다.

4.2 빛이 완전히 차단되지 않는 반투명 벽

형광등을 켠 방에서 문틈으로 약한 빛이 새어나오듯,
파동함수도 장벽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

4.3 좁은 틈 사이로 움직이는 바람

완전히 막힌 문 같은데도, 바람이 아주 조금씩 새어 나오는 상황과 비슷하다.

이 비유들은 “터널링=벽을 통과하는 확률적 파동의 꼬리”라는 핵심을 잘 보여준다.


5. 실제 물리 현상에서 터널링은 필수적이다

터널링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과 자연현상 전반에 깊숙이 자리한다.


5.1 원자핵의 알파 붕괴

방사성 원소에서 알파입자가 밖으로 튀어나오는 현상은
고전역학으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알파입자가 핵 내부의 장벽을 터널링해 빠져나갈 수 있다.

알파 붕괴의 반감기는 터널링 확률로 결정되며,
핵물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5.2 주사터널링현미경(STM)

1980년대 처음 원자 이미지를 보여준 장비가 바로 STM이다.

탐침(Tip)을 표면에 극도로 가까이 가져가면
전자가 진공 장벽을 터널링하여 흐른다.
이 전류의 변화를 측정함으로써
원자 하나하나를 볼 수 있다.

터널링이 없다면 STM은 존재할 수 없다.


5.3 플래시 메모리(NAND) 저장 장치

전자는 게이트 산화막을 터널링해 트랩층에 저장된다.
저장된 전자가 있으면 “1”, 없으면 “0”.

  • SSD
  • USB
  • 스마트폰 저장장치

이 모든 기기가 터널링에 의존한다.


5.4 태양의 핵융합 반응

태양 중심의 온도는
양성자끼리 전기적 반발을 극복할 만큼 높지 않다.

그럼에도 태양이 빛을 낼 수 있는 이유는
터널링을 통해 양성자들이 장벽을 넘어
핵융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즉, 터널링이 없다면 태양도 없다.


6. 깊이 있는 수학적 구조 — 경계조건이 터널링을 허용한다

장벽 문제의 해는 세 영역으로 나뉜다.

(1) 장벽 왼쪽

Ψ1=Aeikx+Be−ikx\Psi_1 = Ae^{ikx} + Be^{-ikx}

(2) 장벽 내부

Ψ2=Ce−κx+Deκx\Psi_2 = Ce^{-\kappa x} + De^{\kappa x}

(3) 장벽 오른쪽

Ψ3=Feikx\Psi_3 = Fe^{ikx}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건은:

  • 파동함수의 연속성
  • 도함수의 연속성

즉,

Ψ1(0)=Ψ2(0),Ψ1’(0)=Ψ2’(0)\Psi_1(0) = \Psi_2(0),\quad \Psi_1’(0) = \Psi_2’(0) Ψ2(a)=Ψ3(a),Ψ2’(a)=Ψ3’(a)\Psi_2(a) = \Psi_3(a),\quad \Psi_2’(a) = \Psi_3’(a)

이 조건을 풀면
터널링 확률이 자동으로 등장한다.

“경계조건이 장벽 뒤쪽의 파동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7. 반도체·천문·핵물리학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리

터널링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 세계의 작동방식이다.

  • 핵반응
  • 별의 에너지 생산
  • 반도체 저장
  • 표면 분석 장비
  • 나노전자 이동

모두 터널링을 사용한다.

심지어 생명 현상 중 일부(효소 반응 속도 등)에서도
양자터널링이 관여한다는 연구가 있다.


8. 결론 — “벽”의 정의를 바꿔버린 양자의 세계

양자역학은 우리에게 새로운 해석을 강요한다.

고전적 세계에서 “벽”은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양자세계에서 벽은
확률이 통과를 허용하는 경계일 뿐이다.

양자터널링은
우리가 사용하는 기기 속에서 조용히 작동하면서
우주의 구조를 형성하는 근본 원리 중 하나다.

확률이 벽을 넘는다는 사실 자체가
양자역학의 매력이며,
우리가 고전적 상식을 넘어
미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다.